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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그에게 헤어지자는 말을 했다. 그는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내게 이유를 물었다. 나는 정확하게 설명할 수 없다는 말과 함께 그의 질문을 회피했다. 아니, 외면했던 게 맞았다. 나 역시 그 이유가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지 못했으니까. 그는 화가 난 얼굴로 뚫어져라 나를 쳐다보더니, 말없이 카페를 떠나버렸다. 주문한 커피가 나왔는지 조용히 커피 잔을 내려놓고 사라지는 직원의 뒷모습이 보였다. 커피 향이 코를 감싸며 퍼져나갔다. 그러나, 단 한 모금도 마시지는 않았다. 그렇게 밤은 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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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 향기에 취해 바닥 밑까지 추락했던 감정들이 스멀거리며 올라왔다. 아직 녹지 않은 설탕이 조그맣게 응어리져 그런 나를 향해 끊임없이 조소를 드러냈다. 울컥하는 마음에 스푼으로 꾹꾹 눌러 분해시켜 버렸다. 그제야 마음이 조금 편해졌던 건지, 참았던 숨을 크게 한 번 내쉬고는, 곰팡이처럼 조금씩 번져오는 커피 잔을 내려놓은 채 카페를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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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그가 없다는 사실에 내 생활은 벌써부터 메마르게 느껴졌다. 과연 잘한 이별이었을까? 질문에 대한 확신이 없었던 내게 스스로 반문하며 물었다. 나는 정말 그와 헤어지고 싶었던 것일까? 질문과 물음을 섞어 세상을 향해 외쳐보지만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상황이 꼬여버린 거다. 그를 사랑하는 시간보다 혼자 이별을 견디는 시간이 덜 아플 거라 여겼던 이기심이 되려, 커다란 아픔으로 다가선다는 걸 이별 후에야 알게 되었다. 나는 지독하게 그 사실을 오해하고 있었다. 순간, 지독한 갈증이 밀려왔다. 한참을 음료수 자판기를 찾다가 근처 불이 켜진 편의점을 발견하고는 곧장 안으로 들어갔다. 진열대에서 아무렇게 뽑아 든 음료수 하나를 꺼내 들고는 그대로 마셔버렸다. 손에 힘이 조금 들어갔는지 캔이 찌그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그럴 때마다 무게가 조금씩 가벼워졌다. 그런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시선이 느껴졌다. 옆으로 시선을 옮겨가자 알바가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순간, 마음을 들킨 듯 움찔 거렸지만 애써 태연한 척 계산대로 걸어가 마시고 있던 캔을 내려놓으며,“이거 얼마죠?”라고 물었다. 한 손으로 음료수를 집어 스캐너를 가져다 댄 알바가 나를 향해, “800원입니다.” 라고 대답했다. 지갑을 꺼내려다 없다는 걸 확인한 나는, 그제야 그와 헤어졌던 카페에 지갑을 두고 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혹시 몰라 주머니에 손을 집어넣으니, 동전 몇 개가 만져졌다. 500원짜리 동전 두 개와 300원이 들어 있었다. 황급히 계산을 치르고 편의점을 나섰다.

집으로 향하던 길. 미처 살피지 못한 알바의 모습이 순간 그려졌다. 내 손에 든 음료수와 나를 번갈아 쳐다보며 의아한 가득한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던 게 그와 닮아있었다. 그러자 신기하게도 그와 헤어졌던 그곳으로 다시 돌아갈 수 있는 이유 하나가 생겨났다. 지갑 때문이라는 거창한 이유가 하나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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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그가 바코드였다면, 알바가 들고 있던 스캐너로 그를 읽어낼 수 있었다면 '우리가 이별로 이어지는 상황까지 내몰리진 않았을까?'라는 생각도 잠시 해보았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마음은 아닌데도 이별할 수밖에 없었던 수많은 연인들처럼 이별을 먼저 말한 그 사실 때문에 다시 붙잡을 수 없고, 이별을 당한 그 사실 때문에 떠난 연인을 붙잡을 수 없는 이유처럼 두 번 다신, 되돌릴 수가 없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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